대법원에서 ‘태아산재’를 인정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개정으로 이어지지 않아 2세 산재 신청과 승인은 여전히 제도 바깥에 놓여 있다. 국회에 관련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은 탓에 개정안 통과까지는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4월29일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한 간호사 4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신청 반려처분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간호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산재보험법 해석상 모체와 태아는 ‘본성상 단일체’로 취급된다”고 판단했다. 태아의 건강손상이나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도 엄마 노동자의 산재로 인정할 수 있다는 최초 판례였다. 당시 모성보호 범위를 크게 넓힌 전향적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록 산재보험법 개정에는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법원 판결 이후에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소송 당사자들도 요양급여 신청을 하지 않아 지급받은 보험급여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21대 국회에 발의된 관련법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 박주민·장철민 의원안, 이영 국민의힘 의원안, 강은미 정의당 의원안이 있다. 세부적인 내용에는 차이가 있지만 4건 개정안 모두 산재보험법 적용범위에 여러 위험한 환경에 노출돼 장애 또는 질병이 있는 태아를 출산한 경우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하고 보험급여를 지급하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발의됐다. 하지만 개정안은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조차되지 않았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다. 정부안은 20대 국회에서 당시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발의된 바 있다. 정부는 ‘자녀 건강손상에 대한 산재보상 방안 및 자녀 유족수급권 보장방안’ 연구용역을 한 뒤 이를 토대로 법안을 성안했지만 이용득 의원안은 회기만료로 폐기되고 말았다. 이후 정부는 구체적인 개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지 않다.
노동계에서는 대법원 판결 취지대로 폭넓게 태아산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자녀의 건강손상에 대한 범위를 ‘임신 중 근로자’와 같은 여성으로 한정하지 말고 남성까지 포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승규 공인노무사(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는 “여성에 한해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남성의 유해인자 노출로 인한 자녀의 건강손상까지 포함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뿐만 아니라 자녀의 건강손상은 상당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렵기 때문에 생식독성물질 노출 가능성이 있으면 인정하는 방향으로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내용도 포함돼야 한다”고 밝혔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