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5% 오른 시간당 9천860원(월 206만740원)으로 최종 결정됐다. 2021년 적용 최저임금 1.5% 인상에 이어 1988년 최저임금 제도 시행 후 두 번째로 낮은 인상률이다. 내년 물가인상률 전망 평균치 3.4%에도 미치지 못해 최저임금 노동자의 실질임금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외환위기때 보다 낮은 인상률
최저임금위원회(위원장 박준식)는 지난 18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14차 전원회의를 열었다. 자정이 넘은 시점까지 노사의 팽팽한 줄다리가 계속되자 차수를 변경해 회의를 이어갔고 19일 오전 6시가 넘어서야 내년 최저임금을 최종 의결했다.
최저임금위는 정회와 속개를 반복하며 노사 이견을 좁혀 나갔다. 노사 최종제시안은 각각 1만원, 9천860원으로 140원차였다. 최저임금위는 노사안을 최종 표결에 부쳤고, 사용자안 찬성이 17표로 최종 결정됐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에 동의한 사람은 노동자위원 8명뿐이었다. 1명은 기권했다.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이 구속되면서 생긴 공석이 채워지지 않으면서 노사공 위원 27명 중 26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5.5%였지만 최저임금 인상률은 2.7%였다. 내년 인상률은 외환위기 때보다 낮은 인상안인 것이다.
공익위원, 노사 요청에
‘9천820원~1만150원’ 심의촉진 구간 제시
논의는 지난했다. 노동자위원은 7차 수정안으로 1만620원, 사용자위원은 9천795원으로 제시했다. 앞서 노사는 6차 수정안으로 각각 1만620원과 9천785원을 냈다. 노동계 요구안은 6차 수정안과 액수가 같지만 인상 주장 근거로 1인 가구 생계비 증가율 10.4%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사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노동계는 공익위원에 심의촉진 구간 제시 및 조정을 요구했지만 공익위원은 노사에 8차 수정안 제출을 요구했다.
노사가 8차 수정안으로 조금씩 양보한 1만580원, 9천805원을 제출하자, 공익위원은 올해 최저임금 9천620원에서 각각 2.1%, 5.5% 인상한 9천820원, 1만150원 사이를 심의촉진 구간으로 제시했다. 2.1% 인상안은 300명 미만 사업장 임금총액 상승분을 반영했고, 5.5% 인상안에 대한 근거로 한국은행(3.4%)·한국개발연구원(3.4%)·기획재정부(3.3%) 3개 기관 평균 물가상승률(3.4%)과 생계비 개선분(2.1%)를 제시했다.
공익위원 조정안 9천920원, 노사 합의 압박
조정안 표결은 ‘노사 자율합의’ 강조하며 거부
공익위원 표결에서 100% 사용자안 선택
심의촉진 구간 내 9차 수정안 수준을 두고 노동계 내부 논의가 길어지면서 회의는 2시간 가까이 지연됐다. 결국 노동자위원은 ‘한국노총 제시안’으로 1만20원을, 사용자위원은 9천830원을 제시했다. 10차 수정안으로 노동자위원은 기존안 고수, 사용자위원은 9천840원을 제출했다.
노사 간극이 180원으로 좁혀지자 공익위원은 조정안으로 9천920원을 제안하며 노사합의를 요청했다. 노동계 요구안을 1만원으로 어림잡고 사용자위원안 9천840원의 중간 지점이다. 사용자위원은 공익위원안을 수용했지만 노동계는 최종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결국 노사 11차 수정안이자 최종안인 1만원, 9천860원을 표결에 부쳐 사용자위원안이 채택됐다.
공익위원이 책임을 방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공익위원이 조정안으로 제시한 9천920원을 공익위원안으로 올려 표결에 부칠 수도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노동계가 공익위원의 최저임금 산식, 제시한 촉진구간에 문제제기를 하며 공익위원의 개입을 멈추라고 요구해 왔다는 이유다. 권순원 공익위원은 “내부 논의를 통해 9천920원을 (조정안으로) 제시했고, 노사 양측의 입장에서 볼 때 최적의 수단으로 판단했지만 노동계가 거부한 결과”라며 노동계에 책임을 돌렸다.
내년 최저임금이 9천800원 선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정부 고위 관계자’ 발언을 인용한 한 언론사 보도처럼 최저임금이 결정된 데에 권 위원은 “공익위원들이 9천920원을 제안하면서 모 경제지에 있었던 정부 고위관계자 발언은 정리됐다고 본다”고 부연했다.
노동계 “실질임금 삭감안”
노동계는 최저임금 표결 직후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실질임금 삭감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2017년 여야를 막론한 주요 대선후보들이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지만 올해도 1만원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비혼단신생계비(241만원)에도 미치지 못하고 물가상승과 예정된 공공요금 인상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안정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매년 반복되는 사용자위원의 동결, 업종별 차등적용 주장, 정부의 월권과 부당한 개입에 사라진 최저임금위원회의 자율성·독립성·공정성을 확립하는 방안을 깊게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8월5일까지 내년 최저임금을 고시해야 한다. 노사는 최저임금안이 고시된 날부터 10일 이내 노동부 장관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만 1988년 최저임금제도 시행 이후 재심의가 이뤄진 적은 한 번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