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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뉴스]직장 내 괴롭힘 첫 조사..4명 중 3명 "1년 새 당한 적 있다"
날짜 : 2017-12-19

인권위, 1506명 대상 '국가기관 첫 조사'서 73.3% 대답
3명 중 2명은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이직 고민한 적 있다"
노동시간 길수록 심하고 동료 통한 '간접 괴롭힘' 공포도
전문가 "법률 제정 등 직장 내 괴롭힘 막을 대책 마련 시급"
[한겨레]
국가기관이 처음으로 직장 내 괴롭힘 실태를 조사한 결과, 직장인 4명 중 3명이 최근 1년 동안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출근길에 나선 시민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국가기관이 처음으로 직장 내 괴롭힘 실태를 조사한 결과, 직장인 넷에 셋은 최근 1년 동안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 셋 가운데 둘은 괴롭힘 때문에 이직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하는 등 한국 사회에 직장 내 괴롭힘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이로 인한 직장인들의 고통이 작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직장 내 괴롭힘을 막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 제정 등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8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숙명여대 산학협력단(연구책임 홍성수 법학부 교수)에 의뢰해 최근 제출받은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직장인 가운데 73.3%가 최근 1년간 직장에서 존엄성이 침해되거나 적대적, 위협적, 모욕적인 업무환경이 조성되는 경험을 한차례 이상 겪었다고 응답했다. 한달에 한번 이상 괴롭힘을 당한다는 이도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46.5%에 달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경력 1년 이상의 직장인 1506명을 대상으로 사용자가 개입할 수 없는 스마트폰·태블릿피시 등을 이용해 이뤄졌다. 국가기관 차원에서 직장 내 괴롭힘 실태를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불필요한 야근이나 휴일 노동 등을 통한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 건강 확보와 일·가정 양립 등에 방해가 된다는 기존 상식에서 나아가 그 자체로 직장 내 괴롭힘의 수단이 되거나 괴롭힘에 취약한 직장 환경을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주 동안 추가 노동이 5시간 미만인 집단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이는 63.8%에 그쳤으나, 12시간 이상 추가 노동을 하는 집단에선 81.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성수 교수는 “근로시간이 길어질수록 직장 내의 상호관계가 증가하고 업무 스트레스가 향상되는 등 괴롭힘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된다”고 해석했다.
직장 내 괴롭힘은 직장인으로 하여금 전직을 고민하게 하거나 직장에 대한 신뢰를 크게 떨어뜨린다는 사실도 이번 조사에서 확인됐다. 직장인 셋 중 두 명꼴인 66.9%가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직장을 옮길 것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상급자나 회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거나 “업무 능력이나 집중도가 떨어졌다”고 응답한 이도 각각 64.9%에 달했다. 최근 1년 안에 직장을 그만둔 경험이 있는 이 가운데 절반 가까운 48.1%가 “괴롭힘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다”고 답했다.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잦을수록 자살을 생각하고 계획하거나 실제 시도하는 비율도 따라서 올라가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적이 없다고 응답한 이 가운데 같은 기간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이는 7.7%였으나, 한 주에 한 번가량은 괴롭힘을 당한다는 이의 자살 생각은 20.6%에 이르렀다. 거의 매일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다고 답한 이 가운데 열에 한 명(10.6%)은 최근 1년간 실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적이 없다고 답한 직장인의 자살 시도율(1.5%)과는 큰 차이다.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 가운데 하나는 동료를 통한 간접적인 직장 내 괴롭힘이 직장인에게 끼치는 공포와 스트레스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난 대목이다. 응답자의 27.6%가 현재 직장에서 다른 직원이 괴롭힘을 당하는 걸 목격하거나 전해들었다고 답했는데, 이들 중 90.4%가 “나도 비슷한 경험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의 21.4%가 “다른 직원의 경험으로부터 나 역시 존엄성이 침해되거나 적대적, 위협적, 모욕적 환경이 조성된다고 느꼈다”고 밝혀 간접 경험이 끼치는 학습 효과가 상당함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조사의 또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직장인들이 직장 내 괴롭힘의 구체적인 유형에 대한 민감도가 낮게 나타난 대목이다. 연구팀이 30개 유형을 제시하고 “각 행위들로 인해 존엄성이 침해되거나 적대적, 위협적, 모욕적인 업무 환경이 조성됐을 경우”를 전제로 개별 유형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느냐고 물었으나, “업무와 관련해 나에게 사소한 일에 트집을 잡거나 시비를 건 경우”가 53.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내 능력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일을 하도록 지시하거나 일부러 일을 거의 주지 않았다”는 경우는 42.1%로 가장 낮았다.
홍 교수는 “기존 차별금지법, 노동법, 민사 구제, 형사 구제 등으로 괴롭힘 행위의 일부가 이미 규제되고 있지만, 효과적으로 구제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며 “적극적으로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관한 총체적인 대응에 나서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을 법으로 명확히 한 뒤 예방교육 등 사용자에 대한 의무를 부과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구제할 기관을 지정하는 등의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이번에 나타난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전문가와 관계기관의 의견을 수렴한 뒤 내년 초 정책 개선 사항을 관계부처에 권고할 계획이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출처 : 한겨레 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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